여행의 피로가 그대로인 채로 새벽에 일어나 바로셀로나로 가는 비행기를 탔습니다.
정신없이 공항에 들어왔는데 나중에 보니 아끼던 목도리를 잃어버렸습니다.
왠만해선 물건을 빠뜨리지 않는데 정말 정신이 없었나 봅니다. 어찌나 속이 상하던지 여행이 너무 우울해졌습니다.
그래도 관광은 계속되고, 그러나 가우디의 걸작 구엘공원과 성가족성당을 보고는 그래도 잘 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처음 공항을 나와서 몬주익 언덕에 올라 올림픽스타디움과 황영조가 마라톤으로 금메달을 딴 곳을 봤습니다. 점심을 해물부페로 거하게 먹고 원기를 회복한 후 오후 관광에 나섰습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가우디가 구엘의 후원으로 만든 구엘공원을 봤습니다.
100년 전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만든 그의 작품에 대한 반응은 그리 신통치 못했나봅니다. 그러나 그의 천재성을 알아준 구엘이라는 사람이 있었고 그의 전적인 후원으로 산 아래 넓은 부지에 건축을 하기 시작했답니다. 그런데 구엘이 죽자 그의 후손들은 가우디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였고 그래서 그의 꿈은 미완으로 남게된 것이지요.
하지만 그가 만든 광장과 산책로, 그리고 그가 말년에 그의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집은 마치 동화 속 그 모습 그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었습니다.
도자기를 깨서 일일이 색깔을 맞춘 그의 색감, 그리고 자연을 그대로 옮겨 놓은 돌기둥, 그리고 공원의 마스코트 도마뱀 사이로 흐르는 물까지, 어린아이와 같은 상상력과 치밀한 과학적인 구성과 뛰어난 미적 감각까지, 벌어진 입은 그 다음 성가족성당을 다 볼 때까지 다물어 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리고 피카소 미술관에서의 가이드의 유창한 설명은 바로셀로나를 가장 의미있는 도시로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어딜가나 앉을 수 있는 벤치가 있고, 따뜻한 태양 아래서 느긋하게 햇볕을 즐기는 사람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포옹하며 키스하며 마음껏 이 도시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그들.
무엇이 이렇게 많은 예술가를 베출해 낸 나라인지 알것도 같았습니다.
자유와, 사랑과, 여유, 친절한 사람들,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
물론 그들에게도 아픔의 역사가 있었지만 그들의 여유로움이 부러웠습니다.
오기 전에 스페인에 대해 가졌던 그런 선입견이 얼마나 좁은 시각으로 이 나라를 바라본 것인지 깨달았습니다. 물론 소매치기에 대한 주의는 가는 날 까지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혔지만요.ㅎㅎ
마드리드 공항에서 바로셀로나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몬주익언덕에 세워진 올림픽경기장. 88년 우리가 올림픽을 하고 다음에 이어서 올림픽을 열어서 더 친근해진 바로셀로나인지도
구엘공원
벤치가 모두 타일을 깨뜨려 일일이 붙인 모양인데 앉으면 인체공학젹으로 아주 편한 곡선의 모양이다. 가우디는 모든 건축에 직선을 쓰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자연을 사랑한 그는 자연에서 영감을 얻어 기둥의 모양도 나무가 가지를 뻗은 형태로 만들었다.
광장의 아래 부분. 기둥으로 광장을 받치고 있는데 가운데는 기둥을 빼서 공간을 활용할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천장의 둥근 부분들은 소리를 모아서 이곳에서 악기를 연주하면 더 크게 들을 수 있게 설계를 하였다.
구엘공원의 마스코트 도마뱀. 광장의 빗물이 기둥을 통해 이곳으로 흘러나오게 설게하였다.
구엘이 아버지와 살았던 집. 동화 <과자로 만든 집>이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지금은 기념품 판매점으로 쓰고 있었다.
성가족 성당(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현재도 건축이 진행중이며 앞으로 언제 완공될 지도 모른단다.
가우디는 이곳 성당의 지하 방에서 그의 말년을 일하면서 보냈으며 일하던 중 미사 시간을 맞추기 위해 작업복 차림으로 급하게 길을 가다 전차에 치어서 죽었다고 한다.
신분증이 없어 노숙자 취급을 받아 치료의 시기를 놓치고 사망하였다. 천재 건축가는 그렇게 인생의 모든것을 아낌없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성당을 건축하다 외롭게 세상을 떠났다.
그는 말년에 신앙심이 아주 깊어져서 자신의 모든것을 이 건축을 위해 쏟았다고 한다.
기존의 성당의 모습을 못마땅하게 여긴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하나님을 향한 그의 마음을 이 성당에 표현에 놓았다.
동쪽 문에는 예수님의 생애가 조각되어 있고, 서쪽은 고난, 남쪽은 영광을 주제로 하고 있는데 그의 생전에는 동쪽 문 만이 완성이 되었으며 그의 뒤를 이어 유명한 조각가가 서쪽의 고난을 조각하였고 아직 영광은 미완이라고 한다.
동문의 예수님의 탄생과 생애
성당의 기둥은 나무가 뻗어나간 모양이며 그곳에 사복음서의 문양이 조각되어 있고 천장은 꽃모양이다. 가우디는 성댱의 내부에 있는 창문을 모두 스테인드글라스로 할 것을 주문했으며 이 성당이 모두 완공되면 그 모습이 천국의 모습이 아닐까 상상해 본다.
가우디는 성당을 짓기 전 이런 조그만 주머니에 모래를 넣어서 무게를 달아보고 그것을 건축에 적용했다고 한다. 이런 어마 어마한 일을 컴퓨터가 없던 시절에도 가능했던 것은 이런 치밀함이 먼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서문의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관한 조각
가우디의 뒤를 이어 유명한 조각가가 한 것이다.(조각가의 이름이 생각 안남;)
한 기념품가게 안에 있는 완성된 후의 성당의 모습
피카소 미술관